아침에 아이 등원시키고 회사에 도착해 모니터를 켰을 때, 빈 엑셀 창이나 깜빡이는 메일 커서를 보며 30분 넘게 멍 때린 적 있으신가요? '아, 진짜 일하기 싫다'는 생각만 맴돌고 도무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그 느낌. 저는 이걸 '일하기 싫어병'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아침부터 육아 전쟁을 치르느라 내 뇌의 에너지(도파민)가 이미 방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건, 전 세계 사람들도 다 비슷한 마음이라는 겁니다. 최근 챗GPT의 라이벌인 클로드(Claude)를 만든 앤스로픽(Anthropic)에서 8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해요. 긱뉴스(Geeknews)에 요약된 이 결과가 꽤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이 AI를 쓰는 진짜 이유는 '일을 더 많이,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정신적 부담을 줄여서 '내 삶의 여유와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였죠. 결국 우리에게 AI는 엄청난 터미네이터나 천재 비서가 아니라, 퇴근 시간을 앞당겨주는 든든한 '칼퇴 요정'이자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인프라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당장 눈앞에 쌓인, 막막하고 부담스러운 일들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여기서 제 눈을 번쩍 뜨이게 한 해외 개발자의 글(dev.to)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ADHD를 가진 이 개발자도 저처럼 메일 하나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 '시작 마비' 증상을 겪었다고 해요. 복잡한 투두(To-Do) 리스트나 뽀모도로 타이머 같은 건 오히려 부담만 줬고요. 그래서 그는 뇌를 속여서 일단 일을 시작하게 만드는 AI 도구, 'Thawly'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원리는 기가 막히게 단순합니다. '연간 보고서 작성하기'처럼 숨 막히는 업무를 입력하면, AI가 이걸 2분 안에 끝낼 수 있는 아주 하찮고(?) 만만한 '마이크로 스텝'으로 쪼개줍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퀘스트로 "1단계: 워드 프로세서 켜기", 두 번째 퀘스트로 "2단계: 제목과 오늘 날짜 쓰기"를 던져주는 식이죠. 심리 치료에서 쓰이는 기법이라는데, 아주 작은 행동 하나를 완수하면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 찔끔 나와 다음 단계를 할 힘을 준다고 해요. 로그인도 복잡하지 않고, 화면에 딱 하나의 스텝만 보여주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며 홀린 듯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저는 이걸 주말에 아이들과 놀면서, 아니 집안일을 시키면서 써봤습니다. "방 청소해!"라고 하면 아이들은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라 짜증부터 냅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켜고 AI에게 방 청소를 쪼개달라고 했죠. 화면에 "바닥에 있는 레고 블록 1개 줍기", "책상 위 연필 3개 연필꽂이에 넣기" 같은 퀘스트가 떴습니다. 타이머를 켜놓고 게임처럼 미션을 주니 10살짜리 아들이 신나서 움직이더라고요! "이거 완전 인스타 릴스 각인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복잡한 설정 없이 공짜로 폰에서 바로 열리니 가성비와 접근성도 만점입니다.
물론 앤스로픽의 8만 명 인터뷰에서도 나왔듯, 사람들이 AI를 쓸 때 가장 걱정하는 건 '이 녀석이 거짓말(환각)을 하면 어쩌지?' 하는 신뢰성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런 '2분 쪼개기' 퀘스트 같은 경우엔 AI가 엄청난 팩트 체크를 해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거짓말 걱정 없이 그저 나의 귀찮음을 덜어주고 센스 있는 첫발을 내딛게 해주는 용도로는 정말 훌륭합니다.
결국 우리 워킹패런트에게 진짜 필요한 AI는 기술적으로 얼마나 복잡하고 뛰어난지가 아닙니다.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며 버리는 나의 황금 같은 30분을 아껴주고, 주말에 아이들과 웃으며 방 청소 퀘스트를 깰 수 있게 도와주는 다정한 도구죠. 오늘 당장 막막한 업무가 있다면, AI에게 "이거 2분짜리 스텝으로 좀 쪼개줘"라고 말을 걸어보세요. 생각보다 쏠쏠한 재미와 함께, 어느새 칼퇴 준비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