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장의 다음 승부처는 모델 성능이 아니라 ‘요금제’다. 전 세계 AI 사용자는 17~18억 명으로 추산되지만 유료 전환은 3% 수준(멘로벤처스·Platum 인용)에 머문다. 사용자는 많고 결제는 적은 구조에서, 크레딧은 단순 과금 단위가 아니라 전환율·ARPU·마진을 동시에 흔드는 핵심 레버가 됐다.
특히 2025년 크레딧 기반 요금제가 126% 급증하며 표준으로 부상했다는 분석(geeknews 정리)은, 업계가 ‘좌석(Seat) 구독만으로는 AI 비용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크레딧은 가격을 유연하게 만들지만, 잘못 설계하면 유저가 “내가 지금 얼마 쓰는지/왜 이만큼 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해 퍼널 이탈이 발생한다.
Figma의 행보는 이 딜레마를 교과서처럼 드러낸다. 2025년 12월 AI 크레딧 모델을 도입해놓고도 한도 집행을 미뤘다가, 2026년 3월 18일부터 본격 적용했다(geeknews). 무료 사용자에게 월 500 크레딧(약 $12), 엔터프라이즈 풀 시트에 월 4,200 크레딧(약 $100)을 포함시키고, 이월 없는 ‘매월 초기화’로 비용 상한을 걸었다. 3개월간 무료 크레딧을 뿌린 건 선심이 아니라 데이터 수집이었다: 누가(세그먼트) 얼마나(파워 유저 분포) 쓰는지, 어디서(기능) 비용이 터지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업그레이드가 일어나는지를 관측하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성장 관점의 포인트는 ‘파워 로우’다. Figma는 ARR 1만 달러 이상 유료 고객의 75%가 주간 단위로 크레딧을 소모한다는 분포를 확인했다(geeknews). 즉, 전체에게 균등한 크레딧을 주는 방식은 곧 과소/과대 보조금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Figma는 “Dev 시트(500) → Professional 시트(3,000)”처럼 ‘시트 업그레이드가 크레딧 단독 구매보다 압도적으로 이득’인 구조를 심어 업그레이드를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만들었다. 전환 퍼널을 ‘추가 결제’가 아니라 ‘플랜 이동’으로 재정의한 셈이다.
다만 크레딧 모델에는 내재적 긴장이 있다. 프로토타입 제작은 고정 20 크레딧인데 이미지 생성은 모델에 따라 5~25 크레딧처럼 가변적이다(geeknews). 사용자는 가치 기반(기능이 주는 효용)과 비용 기반(모델 토큰 비용)이 섞인 가격표를 해석해야 하고, 이 해석 부담은 곧 전환율 저하로 돌아온다. “LLM 원가가 내려가면 나도 싸지나?”라는 질문에 답이 불명확한 순간, 신뢰(=리텐션)도 흔들린다.
이 지점에서 ‘플랫폼(가치) + 토큰(비용)’ 이원화가 강하게 부상한다. PostHog는 AI 비용을 20% 마진만 얹어 패스스루(pass-through)로 전달하고(geeknews), Clay는 고급 AI 모델 비용을 0% 마크업으로 패스스루하는 대신 플랫폼의 ‘액션/자동화 가치’와 데이터 비용을 분리했다. 핵심은 한 가지: AI 인프라가 범용화될수록, 제품은 “우리가 비싸서가 아니라, 당신이 많이 써서(그리고 그만큼 가치가 있어서) 청구된다”는 구조를 고객에게 설득해야 한다.
이 논의는 OpenAI의 인프라 전략 변화와 맞물리며 더 현실적인 압박이 된다. OpenAI가 IPO를 앞두고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을 접고 클라우드 임대 중심으로 전환하며, 2030년까지 지출 전망을 1.4조 달러에서 6,000억 달러로 낮췄다는 보도(AI넷)는 ‘컴퓨트는 무한정 싸지지 않는다’는 신호다. 공급자의 비용 규율이 강화되면, 애플리케이션 사업자는 결국 (1) 비용을 가격에 전가하거나 (2) 마진을 희생하거나 (3) 제품 경험을 바꿔 사용량 자체를 최적화해야 한다. 크레딧 요금제 실험은 이 셋을 동시에 다루는 성장 실험이 된다.
시사점은 명확하다. 첫째, 크레딧은 ‘무료 체험’이 아니라 ‘과금 교육(Onboarding)’이다. 3개월 크레딧 제공은 활성화가 아니라 가격-가치 학습을 돕는 장치로 설계돼야 한다. 둘째, 파워 유저에게는 상한선(예산 통제)과 하한선(끊김 없는 워크플로)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월 초기화/이월 불가 같은 룰은 비용 예측 가능성을 주지만, 핵심 작업이 중간에 끊기는 순간 즉시 이탈 포인트가 된다. 셋째, ‘플랫폼+토큰’은 총마진의 바닥을 만들고(예: 패스스루에 20% 마크업), 가격 투명성을 올려 장기 LTV를 지키는 선택지다.
전망은 더 흥미롭다. 앞으로 구매 의사결정의 일부가 사람에서 AI 에이전트로 넘어가면, 복잡한 사용량 기반 요금제가 오히려 유리해질 수 있다는 관측(geeknews)이 나온다. 에이전트는 심리적 가격효과에 덜 흔들리고, 약관·사용량·예산 상한 같은 ‘기계가 읽기 쉬운 투명성’을 선호한다. 결국 요금제의 승자는 “사람에게는 단순하게 보이고, 시스템/에이전트에게는 정밀하게 최적화 가능한” 이중 인터페이스를 만든 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크레딧은 이제 가격표가 아니라, 성장 엔진의 설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