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많은 개발자가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AI API 하나를 붙여 사용자가 쓰는 프로덕트를 출시하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두 개의 인디 프로젝트가 그 방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줬다. 하나는 어려운 대화를 연습하는 시뮬레이터 cosskill이고, 다른 하나는 채용 공고를 구조화된 데이터로 파싱해주는 JD Intelligence다. 두 프로젝트 모두 AI API 한 개로 시작했고, 빠르게 출시했으며, 지금 실제 사용자와 마주하고 있다.
문제부터 시작한 설계
cosskill을 만든 개발자는 연봉 협상을 앞두고 말 한마디 못 꺼낸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아는 것과 실제로 말하는 것 사이의 간극—그걸 메우는 도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해결책은 단순했다. 현실과 비슷하게 '밀어붙이는' AI 페르소나를 만들어 대화를 반복 연습하게 하는 것. 버핏 페르소나는 당신의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칭찬하지 않는다. "단점이 뭐죠?"라고 계속 물어본다. 소크라테스는 당신의 논리를 끝없이 해체한다. 동의하는 챗봇이 아니라 저항하는 시뮬레이터가 핵심이다.
JD Intelligence는 채용 공고 파싱 시장의 공백에서 출발했다. Affinda 같은 기존 솔루션은 월 $800부터 시작하고 영업 통화까지 필요하다. 인디 채용 플랫폼이나 ATS 툴을 만드는 개발자에게는 현실적이지 않다. $29/월, 7일 무료 체험, 영업 통화 없음—이 세 가지가 포지셔닝의 전부다.
'덜어냄'이 설계의 핵심이었다
두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건 기능을 추가한 결정보다 제거한 결정이다.
cosskill은 회원가입을 없앴다. 채팅 히스토리는 localStorage에만 저장한다. 로그인 벽을 세우면 '오늘 연습해봐야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탭을 닫아버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찰이 0에 가까울수록 실제 연습 횟수가 늘어난다. 이건 단순한 UX 감각이 아니라 프로덕트 가설이다.
JD Intelligence는 Redis 캐싱으로 동일한 채용 공고가 두 번 들어올 때 Claude API를 재호출하지 않는다. 채용 공고 신디케이션 환경에서는 같은 JD가 여러 플랫폼에 올라가는 일이 빈번하다. 캐시 TTL 24시간 설정 하나로 실질적인 API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 비용 구조를 설계에 통합한 것이다.
AI 모델 선택은 철학이다
cosskill은 GPT-4나 Claude 대신 DeepSeek을 선택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한 대화당 10~30개 메시지, 페르소나 일관성 유지가 핵심 태스크인 상황에서 GPT-4 수준의 품질이 필요하지 않다. DeepSeek이 90% 품질을 훨씬 낮은 비용에 제공한다면, 남은 10%를 위해 무료 사용자에게 드는 비용을 3~5배 지출할 이유가 없다. 모델 선택이 곧 비즈니스 모델 설계다.
JD Intelligence는 반대로 Claude API를 선택했다. 채용 공고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노이즈가 많다. "Adobe 제품군 경험"이라는 표현에서 구체적인 스킬을 추출하고, "소규모 엔지니어 팀을 리드하며 CTO에게 보고"라는 문장에서 시니어 레벨을 추론하는 건 규칙 기반 파싱이나 fine-tuned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 Claude의 문맥 이해 능력이 이 애매함을 잘 처리한다는 걸 실험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비용과 지연 시간을 감수한 것이다. /parse 호출 한 번에 1~3초, 몇 센트의 API 비용—채용 공고 제출 시점에만 호출하면 충분히 감당 가능한 트레이드오프다.
인프라는 '문제가 없는 곳'에 쓰지 않는다
cosskill의 기술 스택은 Next.js 16 + Cloudflare Workers + D1(엣지 SQLite)이다. Vercel이 아닌 Cloudflare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D1을 쓰면 별도 DB 서비스와 커넥션 풀링 없이 엣지에서 모든 게 해결된다. Next.js와의 DX는 Vercel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배포 단순성이 그 차이를 상쇄한다. 아직 사용자가 많지 않은 초기 프로덕트에서 인프라 복잡도를 줄이는 건 기능 개발 속도와 직결된다.
JD Intelligence는 FastAPI + Railway + Stripe 조합이다. 복잡한 인프라 설계 없이 zero-config 배포, 자동 OpenAPI 문서, 미터링 과금까지 한 번에 해결했다. 초기 프로덕트에서 인프라에 쏟는 시간은 사용자에게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프론트엔드 개발자에게 남기는 시사점
두 프로젝트가 공유하는 출시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 없어도 되는 것'을 먼저 결정하고, 그 나머지로 첫 버전을 만든다.
회원가입, 완벽한 모델 선택, 최적화된 인프라—이 모든 것은 사용자가 실제로 쓰는 프로덕트가 생긴 다음에 개선할 수 있다. 반면 '어떤 문제를 푸는가'와 '그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이 마찰 없이 도달하게 하는가'는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
AI API는 이제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백엔드 팀 없이도 의미 있는 지능을 제품에 담을 수 있게 해준다. Claude든 DeepSeek이든 OpenAI든—API 하나의 접근 비용은 내려갔고, 진입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 것인가'로 이동했다.
다음 단계: 검증 이후가 진짜 설계다
cosskill은 현재 급여 협상 연습과 이별 문자 도움 페이지에 트래픽이 집중되고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대화를 두려워하는지 데이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JD Intelligence는 출시 직후 /score 엔드포인트의 매칭 기준 유연성에 대한 피드백을 수집 중이다.
빠른 출시는 가설 검증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첫 버전이 살아있어야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인다. 그리고 그 신호를 보고 나서야 '고도화'가 방향을 갖는다. AI API 하나로 시작하는 프로덕트의 진짜 경쟁력은 모델 선택이나 스택 최적화가 아니라, 이 피드백 루프를 얼마나 빠르게 돌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