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다 해준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AI는 놀랍도록 빠르게 초안을 뽑아내고, 수백 개의 리뷰를 분류하고, 코드를 생성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하는지, 만든 기능을 살릴지 버릴지, 리젝 사유를 어떻게 돌파할지—그 판단은 여전히 사람 몫이다. 최근 velog의 UX 실습 회고와 GeekNews에 올라온 DevClip 24일 개발기는 이 사실을 정반대의 포지션에서 동시에 증명한다.
문제 발굴: AI는 가설 범위를 넓히는 도구다
velog의 글에서 저자는 회원가입 퍼널 분석을 예시로 든다. 이메일 인증 단계 이탈률이 높다는 데이터는 분명하다. 그런데 AI에게 그냥 "이 데이터 분석해줘"라고 던지면 일반적이고 맥락 없는 답변이 나온다. 역할·목적·데이터·분석 기준·출력 형식을 함께 주면 메일 지연, 안내 문구 난이도, 재전송 버튼 접근성, 가입 과정 피로감 등 혼자라면 한두 가지에서 멈췄을 가설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핵심은 AI가 원인을 '결론' 내려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데이터는 신호를 줄 뿐이고, 그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이 여러 갈래임을 AI가 빠르게 시각화해준다. 결제 페이지 체류시간이 길다는 수치 하나를 두고 AI가 "결제 오류 때문에 이탈했다"고 단정한다면, 그건 할루시네이션이다. 확인된 사실과 AI의 추정을 명시적으로 분리하도록 프롬프트에 요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프로토타이핑: 판단의 속도를 높이는 파트너
DevClip 개발기는 다른 각도를 보여준다. 저자는 Claude Code로 24일간 310건의 대화를 나누며 macOS 클립보드 매니저를 출시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결함 지적 28건, 제안 거절·롤백 15건.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수용한 게 아니라, 읽고 판단하고 되돌리는 루프가 개발 전체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스니펫 기능을 만들었다가 "사용성이 별로다"는 판단 하나로 통째로 제거한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다. 만든 것을 버리는 결정은 AI가 내릴 수 없다. 자동 붙여넣기 기능을 처음엔 위험하다고 뺐다가, 직접 쓰다 불편해서 되살리고, 그게 앱스토어 리젝 사유가 된 뒤에도 기능을 지키기로 결정한 것—이 모든 판단의 흐름은 제품을 실제로 쓰는 사람만이 내릴 수 있다.
검증: AI 신뢰는 루프 설계에서 나온다
두 사례 모두 같은 교훈을 공유한다. AI를 신뢰하려면 검증 루프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는 것. DevClip 저자는 AI가 이미지 드래그 버그를 세 번이나 추측으로 고치자 "테스트를 좀 해라"고 지시했고, 그 이후부터 실제 데이터로 검증 후 수정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현재 테스트 270개 중 상당수가 그렇게 만든 회귀 방지 테스트다.
velog 실습에서도 마찬가지다. AI에게 사실과 추정을 분리하도록 요청하고, 추가 검증에 필요한 데이터와 리서치 방법까지 함께 정리하는 3단계 흐름—사실 확인 → 가설 제안 → 검증 계획—을 반복했다. AI 답변이 자연스럽고 완성도 높게 보일수록 오히려 더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는 역설을 몸으로 익힌 과정이기도 하다.
시사점: AI는 프로덕트 사이클의 확장 레버다
이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실용 원칙이 보인다. AI는 프로덕트 사이클의 각 단계에서 판단의 폭과 속도를 확장하는 레버로 작동한다. 문제 발굴 단계에서는 가설의 다양성을, 프로토타이핑 단계에서는 구현 속도를, 검증 단계에서는 테스트 커버리지를 늘려준다. 하지만 어느 단계에서도 '무엇을 만들 것인가', '이 기능을 살릴 것인가', '이 데이터가 진짜 사용자 문제를 가리키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사람이 내려야 한다.
전망: '질문 설계'가 새로운 핵심 역량이 된다
AI 도구가 고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중요해지는 역량은 질문을 잘 만드는 것이다. 프롬프트에 역할·목적·기준·출력 형식을 구체화하는 것, AI 답변에서 사실과 추정을 분리하는 것, 제안된 아이디어 중 사용자 영향·실행 가능성·서비스 목표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 모두가 프로덕트 사고와 AI 활용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앞으로 프론트엔드 개발자와 프로덕트 디자이너 모두에게 요구되는 건 AI를 '얼마나 많이 쓰는가'가 아니라 'AI와 어떻게 협업 구조를 설계하는가'일 것이다.